의성궁



해마다 이맘 때면, 지인들에게 전화를 받는다. 고3 학생을 자제 또는 조카로 둔 사람들이 어느 학교 어느 학과를 선택하는게 좋을지에 대한 상담을 해온다. 또한, 2학년 진학과 함께 전공을 선택하는 UNIST 교육과정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심각한 얼굴로 교수실을 찾아 진로에 대해 문의한다. 안타깝지만 삼십년 남짓, 그것도 학교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정확한 답을 해주겠는가. 하지만, 그런 고민들을 듣고 있노라면 의아한, 어쩌면 비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들을 발견한다.

많은 경우 부모들은 학생들의 전공 선택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진로 선택에 있어 부모와 갈등을 겪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큰 맥락은 늘 같다. 적성과 흥미에 기반한 학생의 선택과 경제적 안정 및 성공을 중시하는 부모의 선호간의 대립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학생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싶고 예술적 감각도 뛰어나지만, 최근 각광받는다는 에너지나 생명공학을 전공하라는 부모의 뜻을 이기지 못하고 그다지 흥미가 없는 학문을 공부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겪는 학생들이 찾아오는 경우 독하지만 차가운 사실을 이야기 해준다. 부모들이 미래를 보는 관점,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 성공에 대한 감각은 딱 부모의 현수준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부모의 현수준을 보고 그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준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모의 현재 위치는 자녀들에게 조언을 했던 그 지식과 지혜 그리고 비젼을 토대로 구축되었다. 자신들의 결정을 따를 경우 자녀의 성공을 자신하는 부모라면, 본인들부터가 그러한 혜안으로 현재 성공을 누리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류에 편승하는 전공 또는 직업을 고집하는 많은 부모가 그러한 전공이나 직업과는 무관하며, 본인들의 위치가 자녀들이 되어주기 바라는 위상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본인들이 모르는 길을 언론이나 소문만을 듣고 자녀들에게 가라고 고집하고있다.

신문 등에 미래 유망직종 등을 언급하는 자칭 전문가들 역시 우스운 것은 매한가지이다. 미래의 뜨는 직종이라는 기사에 미래에는 애완견 숫자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애견미용사를 10년 후 최고의 인기직종 10선에 넣었던 신문기사를 15년 전에 본 기억이 난다. 어떤 분야가 뜨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직업을 권하는 "전문가들"은 수요가 늘더라도 공급이 함께 증가하면 그 가치는 상승하지 않는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교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진로상담에 응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상황과 지금까지의 역사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해 줄 수는 있어도 미래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현상황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고, 어쩌면 미래의 일부를 만들어감으로써 미래에 대한 시각이 보통 사람보다 밝을 수는 있지만, 그 누가 스티브 잡스나 주커버그 등의 등장으로 발생하는 산업과 사회의 변혁 등을 예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자녀에게 어떤 진로를 어떻게 권하는 것이 좋을까? 또한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선, 위와 같은 이유들로 부모가 자녀에게 특정 진로를 강요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임을 먼저 강조한다. 아울러, 어떤 진로를 선택하는가보다 해당 진로 안에서 얼마나 잘해나가는가가 경제적 안정과 여유를 결정함을 상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뜨는 직업보단 자녀가 잘 할 수 있는 직업, 즉, 흥미와 적성에 맞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자녀의 선택이 다소 불안해보여도 흔들림 없이 응원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아직도 자녀의 선택이 불안한 부모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자녀가 본인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고, 더 큰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렇다"라면, 자녀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의 인생에 참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해보자.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에게 조언은 해줄 수 있지만, 결정을 강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학생들 역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있어 단호하고 냉철해야 한다. 사회에 나온 후로 부모들은 자녀들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아니, 사실 책임질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모든 선택은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사용하여 결정해야 한다. 부모의 의견은 참고만 할 뿐, 비논리적 맹신은 금물이다. 전문가나 교수들에게도 역시 결정에 도움을 주는 데이터만을 구하고, 결정 그 자체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진로 선택에서 믿을 것은 본인의 지식과 통찰력 뿐이다. 직업을 통한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본인의 적성과 능력은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며, 개인의 성공에서 어떤 직업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증감은 부차적이기 때문이다.

- 울산매일 12월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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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ui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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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T는 연구중심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목표를 향해 순항 중이다. 현재, 국내의 주요 상위권 대학들은 모두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으며,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비단 국내의 사정만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유수의 대학들은 대부분 교육 보다는 연구에 집중하는 연구중심대학들이며, 더욱 높은 연구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구중심대학에서 교수들은 연구와 교육 모두를 담당하게 되는데,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연구의 비중이 더 높다. 연구가 60이라면 교육은 40 정도의 비중으로 시간 및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명문대학 또는 우수한 대학이라면 교수가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좋은 대학일수록 교수가 한 학기에 맡는 강의의 수와 강의준비에 쓰는 시간이 적어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더 높은 수준의 연구실적을 요구 받는다.


대학의 주된 수요자인 학부생들에게는 이러한 사실이 잘 알려져있지 않다. 얼마전 모 국회의원이 시간강사와 전임교수의 단위 교육 시간당 비용을 따져 전임교수의 인건비가 십수배 비싸다는 논리를 펼친 것도, 연구가 교육보다 앞선 임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나온 주장이었다. 전임교수들의 근무시간의 상당부분은 연구에 투입되고 있기 때문에, 교육시간당 임금으로만 따진다면 주요대학의 교수 인건비는 터무니 없이 높게 나온다.


이와 반대로 교수에게 연구보다는 교육의 의무를 더 많이 지우는 학교들은 교육중심대학이라 분류된다. 교육중심대학에서 교수는 강의가 주된 임무이며, 대부분의 업무시간을 강의를 하거나 효과적인 강의를 위한 교수법과 강의교재의 개발 등으로 사용한다. 대학이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정의에 입각하여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강의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대학이 학생들에게 더 유리하고, 사회적으로도 더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왜 좋은 대학일수록 교육이 아닌 연구를 강조하는 것일까? 또한,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최고의 대학들이라 꼽히는 곳들은 연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최근 대학을 취업사관학교 등으로 포장하거나,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대학은 나쁜 대학이라는 시각과 이어져있다. 답을 먼저 말한다면, 대학의 목적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 백년 전 서양에서 대학은 인류의 지식을 발전시키고 후대에 전하는 다소 사치스러운 목적을 위해 탄생했다. 이러한 명맥을 계속 이어온 것이 연구를 하고, 연구자를 양성하는 연구중심대학인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의 대부분 일자리들은 기존의 정형화된 지식만으로도 충분한 생산성을 얻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아울러 대학교육이 과거에 비해 대중화 되면서 정형화된 지식을 요구하는 수요자들을 위한 대학 역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대학, 특히 연구중심대학의 필요성과 존재의의를 바꿀 수는 없다. 지금 당장을 위해서는 현재 알려진 지식의 교육만으로 충분하지만, 지속적인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후대에도 계속해서 인류의 지식을 발전시키고, 보존할 연구자들이 필요하며, 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연구중심대학인 것이다.


따라서, 비록 연구중심대학의 학생이라 할지라도 강의만 소극적으로 따라간다면, 정형화된 지식 전수에서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교육중심대학교의 교육에 비해 더 얻어가는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 밖의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식을 탐구하고 흡수한다면, 매일매일 인류의 지식을 넓히는 최전선에서 일하는 연구자들의 경험과 지식 뿐만 아니라 먼 훗날 다음 세대의 연구자라는 사명까지도 물려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교수와 함께 연구를 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학교가 보유한 연구시설과 자원을 활용하여 교과서에는 없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 교수나 동료들과 치열한 학문적 논쟁을 벌이고 함께 검증하는 것도 연구중심대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사회 역시 연구중심대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한다. 단순히 지식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학원과 달리 대학은 인류의 지식을 넓히는 임무를 띄고 있으며, 미래에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후속세대를 양성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취업율과 등록금 등의 잣대로 대학을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근시안적인 취업자 양성효과 뿐만 아니라 인류 및 사회 발전의 원동력을 키우기 위한 먼 미래를 보는 관점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울산매일 10월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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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